숨이 막히는 줄 알았다. 예상은 했었지만 몹시 바빴다. 밤과 낮이 바뀐 듯 하기도 했고, 밤이 사라진 것 같기도 했다. 신경을 써야할 것, 챙겨야 할 것이 많았다. 팔찌를 두 개나 만들어서 팔에 매어두었다. 하나 정도의 일은 기억이 가능하지만 두 개, 세 개를 한꺼번에 기억하려면 항시 발견할 수 있는 리마인더가 필요했다. 노란 줄과 파란 줄 각각은 서로 다른 프로젝트를 내게 떠올리게 해주었음은 물론 깊게 잠들지 못하게 해주기도 했다. 평소에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를 걸쳐서 언제나 몸의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것, 절대 풀 수 없도록 매어두었으니 자르지 않는 한 뺄 수도 없다. 그렇게, 며칠을 살았다. 


짜 놓은 표에서 약간의 이탈은 있었지만 일들은 순서대로 가쁘게 정리되었고, 기다리던 목요일 오후가 왔다. 손에서 일감을 떠나보내던 그 날은 4시간을 자고 깼다. 아침도 먹고 점심도 먹었지만 속이 허했고, 계속해서 잠이 쏟아졌다. 하지만 밥을 먹지는 않기로, 잠도 청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은 늘어지는 볕이 가득한 오후의 목욕탕으로 기다시피하여 갔다. 전부는 아니지만, 일이 어느 정도 일단락 되고 나면 반드시 몸을 풀어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며칠을 보냈다. 몸과 가장 온도가 비슷한 커다란 탕에 몸을 멋대로 띄우고 눈을 감아본다. 늘 정신을 담고 다니는 것 마냥 여겨지는 몸이, 정신에게 안긴다면 이런 기분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제서야, 지난 며칠 간을 천천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다행'이라는 단어들이 머리를 떠다녔다. 지난주 화요일의 만남은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지각을 앞두고서 갑자기 올라 탄 처음 타 본 버스는 해 지는 자갈치 시장 쪽을 지나가는 버스였다. 다리로만 걷던 곳을 그렇게 바라보니 통영에라도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었다. 낯선 정류소에 내리자마자 ‘여기가 남포동 맞는데' 하면서 한참을 허둥지둥했던 시간도 생각났다. 자주 오고가던 장소라도 시선을 다른 쪽으로 향하고있을 때 해 마저 지면, 완전히 낯선 곳처럼 느껴지던 그 순간을, 기억했다. 사방을 둘러보다 용두산 공원 위의 탑을 발견하자마자 주저없이 내딛을 수 있었던 걸음, 앉자마자 느꼈던 '다행이다'하는 느낌. 반가운 얼굴들과 목소리들과 바스락대는 종이 소리와 밤의 온도와 습기 찬 숲의 향과 날아든 벌레들과 가끔 부딪히는 유리 그릇의 소리들, 그 모든 것들이 뒤섞인 다행스러운 감정들을 기억했다. 어느새 싸늘해진 바람에 접어올렸던 소매를 한 칸 씩 내려보고, 이제는 나 혼자만 마시지 않는 따뜻한 음료들을 하나씩 들고 있던 손들을 기억했다. 


그 날 무슨 얘기를 했더라, 뭔가 잔뜩 들떠서 종이 구석에 이것저것 썼던 것도 같은데 머릿속은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양 너덜너덜한 기억들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나마 멀쩡한 외관으로 남아 있지만, 막상 전원을 눌러도 켜지지 않는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앞에 둔 기분이다. 섭섭하지만 감전이 안 된 것만으로도 어디야, 하며 아쉬움을 날려버릴만큼 커다란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보는 거다. 


생각해보니 튀어나온 철사 같은 남은 말들의 부스러기들이 마음 속 여기저기를 굴러다니다가 나를 잡아세우기는 했다. 갑자기 길 위에 멈춰서서 산책 나온 개들 사이에 서서 ‘목소리(요즘 내 목소리가 되어주고 있는 작은 노트패드)’에 글쓰기를 감행하기도 했고, 일하던 중에 갑자기 지난 밤 꿈에 대해 몇 페이지인가를 내리적기도 했다. 길게 쓰지 못하는 것들은 낙서로 남겼고 분노도 신남도 글로 좀 풀어냈다. 그 흔적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흔적을 남기던 나’는 기억난다. 참 바쁘긴 했지만 또 그만한 속도로 재미난(?) 일들이 밀도 있게 벌어진 며칠이었구나. 바쁜만큼, 작은 도움을 주고 받은 사람들이 참 고마웠던지 고맙다, 고맙다가 잠들기 전에 쓴 일기에 적혀 있다. 


기록은 참 다행스러운 것이다. 지극한 행복에 대해서나 지독한 불행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할지라도, 이 밍숭맹숭한, 먹고 사느라 바쁜 어떤 날을 어떻게든 써보겠다고 마음 먹는 것은 진심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마음에 안긴 몸이 생각했다.


2015.10.24.생활-글-쓰기 모임 2기 1회 후기


YKSQZME(익스큐즈미)

잡종.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밥.’ 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경제학을 공부했고, ‘그 밥을 여기저기 퍼나르는 방법은? 미디어.’ 라는 결론을 내리고 미디어를 더불어 공부했다. 밥을 실어나를 마음에 쏙 드는 미디어를 찾아 헤매다보니 기획자와 교육자와 디자이너와 개발자를 잇는 사각형 안팎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걸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편식 및 리셋 증후군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보니 주변 사람들에게는 필연적으로 Excuse me하며 사과할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