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이상스럽게도 이번 모임의 언어는 낯설었다. 분명 한국어로 말하고 있지만 내가 듣고 있는 것이 대화가 맞는지 의문스럽던 수학과의 수업이 생각난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붙들고 앉아있다보면 내 식대로 이해되는 순간을 마주하는데, 그제서야 (실제로는 아닐지 모르지만) 정말로 내 식의 사전에 제대로 등록된 것 같다는 느낌에 훌훌 털어낼 수 있다. ‘단어'가 아니라 ‘언어'다. 뜻과 모양새가 1:1로 대응하는 그런 단어의 관계 말고, 그 단어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환경까지 조성된 ‘언어'. 그런 언어는 받아들이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이번 모임의 언어들 중 몇 가지를 내 식대로 받아들였다. 기억을 위한 메모를 남기기에 앞서 오래간만의 경험이던 ‘말'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려 한다. 


‘말’

오래간만에 말을 하는 것은 어려웠다. 일상적인 말들 “뱅쇼 한 잔이요", “안녕하세요.” 같은 건 쉬웠다. 그런데 그 이상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수월하지 않았다.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말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었구나. 난 왜 이렇게 말을 못할까, 그런데 내가 말을 잘 하던 적이 있기나 했던가.(대학을 다닐 때 한 친구는 나를 Adam Smith라고 불렀는데, 그 경제학자는 저서인 ‘국부론’으로도 유명하지만 우리 사이에선 말더듬이였던 것으로도 유명했다.) 누군가의 침묵을 흉내내어 보고, 누군가의 표현을 따라 써 보았지만 내 말이 아니니 사이즈 안 맞는 옷을 걸쳐입고서는 어쩔 줄 몰라하는 느낌이었다.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침묵 밖에 없을 때는 침묵이 편안했는데, 언제든 침묵을 몰아낼 무기가 있다고 생각하니 침묵이 등장할 때마다 몰아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보답으로 돌아오는 길에 목의 묵직함을 느꼈고 다시 묵언을 이어가고 있다. 무력해진 내 옆에 침묵이 앉아서 물끄러미 나를 본다. ‘넌 그 화요일에 대체 내게 무엇을 하려고 했던 거니?’. 


‘사과’

어색한 말들을 걸치고 돌아다녔더니 필연적으로 사과가 따라왔다. 집에 와서 ‘나는 왜 그 말을 했던가'를 한참 생각했다. 모임 자리에서 주고 받은 대화 속에서 떠오른 기억 하나가 있었는데, 그 기억을 함께 공유하고 있을 이에게 나는 미안하다고 말할 거라고 결심했다. 모임과는 무관한 어떤 사람에게 반년 전의 일에 대한 사과를 했다. 싸운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서로가 공유하게 될 짧은 화해를 했다. 다시 언어로 돌아가자. 


모임의 언어 - 문

나는 현장에서 경험하는 글에 대한 개입이 반갑고, 감사한 것이라고 늘 생각한다. 이전에 녹음 파일로 들었던 은순 선생님의 짧지만 중요한 한 마디도 그렇고, 대성 선생님이 첫 시간에 해주셨던 마무리 문장에 대한 언급도 그렇다, 이번에도 ‘문'에 대한 부분을 마음에 우선 잘 새겼다. 문을 열면서 쓰는 글과 활짝 열린 문들을 향해 신나게 내달리는 글에는 분명 차이가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이 ‘문을 여는 과정’은 활자 하나 하나를 써 넣는 마음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도무지 나의 언어로 환원할 수 없어 답답해하고 있었다. 영원히 이 ‘문'이 뭔지 모른 채 삶이 끝나는 거 아냐? 라는 생각도 했다. 왠지 억울했다. 


이 ‘문'을 내 식대로 일단 받아들이게 된 것은 한 대화를 들으면서 작업을 하고 있던 밤이었다. 특별히 관심있게 지켜보는 그래픽 디자인 듀오가 있는데, 그들이 자신들의 작업물에 대해 1시간 가량 비판과 반성을 하고 있는 대화였다. 귀로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눈으로는 쏟아져 온 정보들을 적절하게 정리하고 배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귀에서 ‘괜찮아 보이지만 다시 손 보고 싶은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아무 문제 없어 보이지만 그들이 그 서체를 정한 이유가 없어서, 놓은 자리에 논리가 없어서 다시 디자인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그 순간 모니터 앞에 앉은 내가 경험하고 있던 글자 하나 혹은 도형 하나를 붙들고 낑낑 거리는 과정이 겹친다. 쓸데없는 강박일지도 모르지만 그 어떤 것도 논리나 이유 없이 ‘그냥 예뻐서, 감각적이어서' 놓이는 것은 질색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빠르고 값싸게 생산해내야하는 시대를 잘못 살아가는 멍청한 짓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괜히 그들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그러다 ‘문'이 생각났다. 아무 이유 없이 그저 보기 좋게 꾸미는 작업은 심미적으로는 유쾌하지만 쫀쫀함이 빠진, 어쩌면 활짝 열린 문을 내달린 작업일 수도 있겠구나. 이미지 파일에서 레이어 하나를 더 만들 때도, 선 하나 더 그을 때도 혹은 코드 한 줄을 더 넣을 때도 눈꼽만큼의 용량을 늘리는 데 대한 타당한 이유가 필요하다. 어쩌면 글에서도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감각되지 않지만 인지할 수 있는 구조들이 얽혀서 어떤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눈으로 보이는 쾌적한 레이아웃 이면에 촘촘히 잘 구획된 그리드가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낯설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읽기에는 편안하고 여유 넘치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치밀한 쓰기를, 그렇게만 된다면 늘 써보고 싶다고 말하는 좋은 극을 써 볼수도 있지 않을까. 


모임의 언어 - 간절함

그렇다면 생을 대하는 간절한 태도와는 별개로, 혹은 그 속에 쏟아지는 간절한 표현들과는 별개로 간절하지 않은 글을 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누구의 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남긴 메모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귀퉁이에 ‘거리두기'라는 메모를 해두었다. 내 작업들이 ‘내’가 아니기에 낯선 피드백을 받아도 ‘그런가요?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가 가능하듯, 내 글도 내가 아니라고 여길 때 비로소 멀찍이 놓고 한 번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내 삶도 내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거지? 라는 질문이 이어진다. 문득 옛 기억을 되새긴다. 


‘이정표'

대학시절 누군가가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답 없는 질문에 쏟아지는 저마다의 의견들, “사진을 찍어서?”, “나를 보고 만짐으로서 확인해 줄 수 있는 너희가 있으니까?”, “내 이름으로 만들어진 통장과 카드, 주민등록증이랑 학생증도 있겠다.” 등등. 그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기억" 혹은 “이야기"로서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물론이고 실제로 존재했을지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르는 많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들음으로써 그것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사라질 수 있었던 낱개의 사건이지만, 그 요소들에 이야기가 더해지면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다는 의견.


어쩌면 거리를 두고 가장 적절한 이야기의 형태를 찾아내기 위해 고민하는 이 모든 글쓰기의 과정이, 필연적으로 사라지고야 마는 사람들의 ‘이정표' 세우기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했다. 빵이나 과자, 혹은 금방 날아가버릴 나뭇잎이나 부평초 따위로 이정표를 만드는 사람은 없다. 앞마당에서 혼자 지나다닐 길이 아니라면, 혹은 혼자라도 좀 더 멀리 다녀오는 길이라면 좀 더 뿌리 깊이 세워두고, 방향을 표시하는 화살표에는 치명적인 오해가 생기는 것은 아닐지를 꼼꼼히 살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좀 더 부득부득 바닥을 파내고 굵은 나무를 찾고, 올바르게 표식을 다듬어야 하는 것 아닐까.


글쎄, 나이가 들어 치매가 오기 시작한다면 가볍게 스친 기억들보다는 오히려 바득바득 매달려서 열어보려 했던 문들이 그나마 더 오래 기억에 남아있지 싶다. 그런 문이 아주 많은 삶이라면 아예 치매가 오지 않는 일도 생기려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가까운 약국이나 전문의와의 상담을 조심스레 제안해본다. 그럼, 2주 후에 만나요.


2015.10.29, 생활-글-쓰기 모임 2기 2회 후기


YKSQZME(익스큐즈미)

잡종.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밥.’ 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경제학을 공부했고, ‘그 밥을 여기저기 퍼나르는 방법은? 미디어.’ 라는 결론을 내리고 미디어를 더불어 공부했다. 밥을 실어나를 마음에 쏙 드는 미디어를 찾아 헤매다보니 기획자와 교육자와 디자이너와 개발자를 잇는 사각형 안팎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걸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편식 및 리셋 증후군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보니 주변 사람들에게는 필연적으로 Excuse me하며 사과할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