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16



살림의 정수가 걸레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휴지가 흔해진 지금이야 생활의 오물들을 쉽고 간편하게 훔칠 수 있지만 이전엔 무언가를 흘리면 늘 걸레로 닦아냈다. 걸레가 더럽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내 어머니는 매일매일 걸레를 빨았다. 하루에도 몇번씩 걸레를 빨았던 거 같다. 대충 짠 거 같은데 아무리 힘주어 비틀어도 한방울의 물도 흘러나오지 않던 걸레를 기억하고 있다. 그건 아귀 힘의 차이가 아니라 살림 근육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엌 입구엔 걸레를 두는 통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거기엔 늘 방금 넣어둔 듯한 두 개의 걸레가 놓여 있었다. 


내가 사는 집엔 마땅히 걸레라고 부를만 한 게 없다. 흘리고 넘친 것은 죄다 주방용 휴지로 간편하게 훔쳐내면 되기 때문이다. 오래된 수건을 걸레로 써야겠다 마음 먹었던 때도 있었지만 걸레란 그저 더러운 것을 처리할 때 쓰는 낡은 천이 아니라 자주 빨고 야무지게 쥐어짜낸 것에만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다. 몇번 헌 수건을 걸레로 사용한 적이 있었지만 더럽혀진 걸레를 매번 빠는 게 생각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애써 빨았다고 해도 마땅히 둘만한 곳이 없는 것이다. 걸레를 그저 방치해두면 심한 악취가 나거나 바짝 말라버려 흉물스러워진다. 


생활 속에서 걸레를 사용한다는 것은 물기를 머금고 있는 상태를 내내 유지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언제라도 더럽혀질 수 있는 걸레를 관리하고 또 보살필 수 있을 때, 그렇게 걸레와 가깝게 지낼 수 있을 때 살림도 물기를 머금을 수 있다. 먼지가 쌓이는 수많은 마른 구석들은 걸레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손과 걸레가 하나가 되어 구석의 마른 먼지를 훔쳐내며 수분을 공급하는 일. 식물에 물을 주는 것처럼 살림에도 물을 주어야 한다. 걸레질을 하는 것이 살림에 물을 주는 일이다. 그러니 걸레야말로 생활과 살림의 작은 지표다. 생활과 살림의 목록에 걸레가 있다는 것은 더럽고 하찮은 것에 정성을 다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내 생활과 살림에 걸레라고 부를만 한 것이 없으며 걸레의 자리 또한 없다. 그 부재의 자리가 커다랗게 뚫린 내 삶의 구멍인지도 모른다. 마음에 난 커다란 구멍의 출처 또한 그와 다르지 않은 것일까. 걸레를 손 가까이에 두는 생활, 걸레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태도와 상태를 익힐 수 있을까. 내 생활과 살림에 걸레라는 목록이 깃들 수 있을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한결 같은 태도로 그 걸레(들)을 잘 보살피며 지켜갈 수 있을까.   





 

릴riil

갖은 불화 속에서 언제라도 '잘 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바람을 품고 크고 작은 모임에 관여하고 또 간여하고 있다. 읽고 쓰는 것과 먹고 자는 것을 '일'이 아닌 '힘'으로 전환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누구나 할 수 있는 능력임을 증명하고 알리는 데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