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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쓰기 2²> 길에 누운 사람들 / 최은순

 

할머니가 누워 있었다. 며칠 전부터 보았던 할머니였다. 할머니에게 유독 눈길이 머물렀던 건 쪽파 때문이었다. 수영 팔도시장으로 들어서는 입구 한 켠, 횟집과 화장품 가게 사이에서 할머니는 2, 3단으로 쪽파를 쟁여놓고 팔고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과 차들과 음식 냄새와 분주한 소음들 속에 수북이 쌓인 파. 그 옆에서 할머니는 파를 까고 있었는데 껍질을 까서 하얗게 드러난 머리와 파란 줄기의 색채대비가 눈에 띄었다. 목요일 오후시간이었고 낮에 갔을 때보다 팔도시장은 더욱 시끌벅적 했다. 할머니는 맨바닥에 박스를 깔고 그 위에 모로 누워 있었다. 팔을 접어서 머리에 괴고 눈을 감고 있다가 다가오는 인기척에 눈을 뜨기도 했다. 그 전날에 보았을 때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줌마 두 명과 흥정을 하고 있었다. 천 원을 깎아달라는 한 아줌마의 말에 할머니는 아이고 아줌마, 천 원 씩이나 깎아뿌면 안 됩니더. 일일이 까서 묶고 하는데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데.” 그런 할머니가 오늘은 누워 있었다. 하얗게 새고 헝클어진 파마머리, 새카맣게 탄 얼굴, 쪼그라들 데로 쪼그라든 작은 몸뚱어리. 거칠고 주름 가득한 얼굴에 더해진 피로함에 놀라 순간 마음이 싸 해진다.

 

지난 여름, 지독하게 더웠던 그 여름. 동네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시장에 5일장이 서는 날이면 구루마를 끌고 시장엘 갔었다. 집에서 마트까지는 10, 거기서 시장까지 또 10. 마트와 시장에 가는 길엔 유가면에 치솟고 있는 아파트만큼이나 많은 원룸건물들이 지어지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오후로 접어드는 시간에 시장에 갈 때면 1층 주차장 바닥 그늘진 곳에 막노동 인부들이 누워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잠깐 눈을 붙이는 것이다. 이미 바닥 공사가 끝난 곳이건 건물의 뼈대가 이제 한참 세워지고 있는 곳이건 길을 가다 고개만 돌리면 공사 현장 한 켠에 누워 있는 그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흙과 마른 시멘트가 엉겨 붙은 안전화를 그대로 신은 채, 안전화를 쓰거나 머리에 비스듬히 얹은 채로, 수건이나 장갑을 얹은 나무토막이나 벽돌을 괴고 그들은 그렇게 누워 있다.

 

길에 누워 있는 나를 상상해 본다. 박스나 신문지를 깔고 누워야 하나, 마나를 고민하다가 그냥 맨 바닥에 누워본다. 현풍 시내로 가는 길목 중의 하나, 일부러 사람의 왕래가 그리 많지 않은 길을 골랐는데도 바닥에 눕자마자 온 몸이 들썩인다. 가장 먼저 당도한 것은 공포. 나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차들이 나를 밟고 가진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아니 그 보다는 사람들의 시선이 문제겠지. 웬 미친 여잔가,하고 나를 볼 게 틀림없다. 나라도 그럴 테니. 아니 그보다는 머리, 등짝, 엉덩이와 다리를 통해 전해오는 바닥의 딱딱함이 먼저 일 수도 있겠다. 자잘한 모래와 흙과 돌멩이들이 배기고 날아드는 먼지 때문에 입과 코가 버석대고 간지럽고. 침이나 가래, , 심지어 고양이나 개가 길에 싸지른 똥오줌을 베고 누운 것은 아닌가, 옷에 묻는 것은 아닌가, 하는 따위의 걱정이 들기도 한다.

잠시잠깐 동안의 상상인데도 맨 땅바닥에 몸이 닿는 느낌은 선명하다. 그런데 무방비 상태인 나를 완전하게 드러내놓고 있는 느낌은 어떤 것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나에게 다가오고 멀어지는 차들과 사람들, 사방에서 들려오는 차 소리와 사람들 소리는 그저 내 몸을 스치는 정도가 아니라 일종의 충격이지 않을까,하는 짐작만 할 뿐이다. 하던 일을 멈추고 짬을 내 잠시잠깐 동안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단 1초도 눈 붙일 데 없고 기댈 사람 없이 밤이건 낮이건 수 년 동안 거리에 내몰린 사람들. 저항할 방법도 하소연할 곳도 없이 몸뚱어리마저 길바닥에 내놓고도 쉴 새 없이 가해지는 충격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

며칠 동안 해왔던, 그저 길에 한 번 누워보는 상상은 오후에 봄날 님과의 통화를 하고 난 후 성매매 여성들에게로 옮겨갔다. 짧은 통화였는데도 봄날 님과의 대화는 강렬했다. ‘한 번 풀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 수십 번을 이야기해도 어제 일처럼 생생한 이야기봄날 님은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는 말을 웃으며 건넸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테고 감당하지 못할 무수한 이야기들을 듣게 될 테지. 그러니 좀 더 상상해야겠다. ‘몸에 벌레가 기어다는듯한 수치심과 모멸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절망감, 외로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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