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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두를 홀랑 태워 먹었다. 거의 한 달 만에 볶는 것 같다. 주방 서랍 여기저기에 굴러다니는 인스턴트 커피로 떼우다 더는 주워 먹을 것도 해서 생두를 볶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볶는 것이어서 그런지 나무주걱을 쥔 손의 힘 조절이 잘 되지 않았다. 팔에 힘이 너무 들어가 생두알들이 냄비 밖으로 튀어나고 팔은 금세 아파왔다. 자꾸만 주걱이 냄비의 한쪽으로만 도는 느낌이 들면서 팝핑이 일어남과 동시에 펄펄 피어오르는 연기. 두 평 남짓한 베란다에 연기가 꽉 찼다. 이런 경우는 센터컷이 있는 납작한 면은 새카맣게 타고 반대편의 둥근면은 색이 누리끼리 한 게 제대로 볶이지 않은 상태가 된다. 소쿠리에 담아 체흔을 털어내고 탄 정도가 심한 원두를 걸러낸다. 과연 100그램 중에서 그나마 먹을 만한 것은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건네기 위해 볶은 것이 아닌 게 다행이었다.

 

평소에 하던 운동을 다시 시작한 지 일주일. 중간에 쉬는 시간이 아직도 길다. 한 달 동안 해결해야 할 숙제를 붙들고 있는 동안 늘 하던 낸시의 홈짐운동을 하지 못했다. 그 대신에 줄넘기와 스쿼트, 런지, 푸쉬업 등 기본 동작을 틈틈이 하기는 했지만 평소에 하던 운동에 비하면 그 강도가 생각보다는 약했었나보다. 보통 3, 4가지의 운동을 3라운드 연속으로 한 다음 시간을 재는 타임챌린지의 경우에는 하나의 라운드를 끝내고 그 다음 라운드를 하기까지 쉬는 시간이 일 분을 넘기지 않아야 하지만 이 분을 훨씬 넘어 삼 분 동안 쉬는 경우도 있다. 하나의 라운드를 하는 동안에도 개수를 다 채우지 못하고 멈춰서는 경우도 더러 있다. 딱딱하게 굳은 몸은 여전히 무겁다. 운동을 하는 동안 입은 내내 벌어져 있고 숨은 가슴팍에서 헐떡인다. 금세 피로해지고 지쳐 등이 자꾸만 구부정해진다.

 

다시 생두를 볶는다. 절반이나 태워 먹은 원두가 마음에 걸렸다. 생두를 볶던 기억과 손의 감각을 떠올리고 집중하면서 생두를 볶아보기로 했다. 창문을 닫아 차가운 공기가 닿지 않고 불꽃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베란다가 어두워도 상관없다. 휴대용 가스의 불꽃이 약하든 세든 생두가 볶이는 상태에 따라 이젠 조절이 가능하니 불꽃이 일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불의 세기를 강하게 해서 볶는 것이 훨씬 팝핑이 빨리, 잘 일어나는 것 같다. 예전에는 6분에서 8, 정확하게 그 시간 동안 생두를 볶았지만 생두의 양에 따라 불꽃의 세기에 따라, 그날의 날씨에 따라 생두가 볶이는 시간은 들쑥날쑥이니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됐다. 생두를 볶는 양도 250그램까지 늘려서 볶아도 별 무리가 없다. 그러나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생두 한 알 한 알, 전체가 잘 볶이도록 하는 것. 주걱을 휘저을 때 생두 전체가 움직이도록 하는 것. 물론 알고 있지만 생두를 젓는 나무주걱이 작게 느껴질 만큼 생두의 일부분은 휘젓는 주걱과 상관없이 따로 논다. 한쪽으로만, 냄비의 중앙으로 모이는 생두알. 얼른 주걱으로 중앙에 모인 생두알을 흐트러뜨린다. 맞다. 생두 전체를 움직이게 하려면 냄비 중앙에 생두가 모이도록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쉰다. 한 달 동안 내 편한 대로 운동을 하다 보니 10초의 휴식 시간을 지키면서 동작들을 완수해나가는 리듬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영상을 보면서가 아니라 혼자서 하다 보니 동작들은 느슨하고 정확도도 떨어진다. 가슴팍에서만 헐떡이는 숨을 뱃속까지 내려가도록 해야 한다. 자꾸만 벌어지려는 입을 앙다물고 코로 숨이 들이쉬려고 애를 쓴다. 숨이 가쁠수록 더 크고 깊게 숨을 고른다. 하기 어려운 동작들을 거뜬히 할 수 있고 두 배가 넘는 시간 동안 운동을 할 수는 있지만 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시간에 맞춰 동작을 전환할 수 있는 몸의 리듬, 호흡을 지키는 것이다. 들이마시는 공기가 뱃속까지 내려가 온몸을 돌아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쉴수록 동작은 깊어지고 몸 안쪽의 근육에까지 자극이 된다. 그래서 신체의 운동 기능 중에 가장 중요한 부위가 코어다. 배와 척추를 비롯해 엉덩이와 허벅지 앞부분에 이르는 우리 몸의 중심 근육. 모든 운동의 기본으로서 사실상 모든 운동의 이유는 바로 이 코어 근육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가장 강화하기 힘든 부위가 코어이기도 하다. 우리 몸에서 가장 많은 근육들이 모여 있는 곳이지만 너무나 가늘고 지방에 묻히기 쉬운 부위이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의 숙제를 마무리 할 때쯤 지인이 물었다. 이제 돌아왔냐고. 다시 원래의 생활로, 그 전까지 늘상 해오던 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됐냐고. 다시 돌아왔다고,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커피를 볶고, 미뤄뒀던 만남을 위해 다시 약속을 잡고 사람들을 만난다고 이야기는 했지만 폭풍 같은 시간 뒤의 고요하고도 평화롭고 기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어디에는 눈이 펑펑 오고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다고 하는데도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모르는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청탁원고를 해결하면서 문단이라는 제도와 그 바깥의 영역을 오가는 일, 청탁원고와 생활글을 쓰는 일 그 한가운데 내가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다시 운동을 하고 커피를 볶으면서 느낀 것은 나는 단지 그 두 세계를 왔다 갔다 했을 뿐 제대로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우왕좌왕하는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바로 잡아야 할 것은 중심이지만, 그 중심은 어떤 중심이어야 할까. 생두알 전체가 골고루 볶이고 온몸의 활력을 돌게 할 중심은 그냥 그 자리에 고정된 무언가에 둘러싸인 채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냄비 중앙으로 모이는 생두를 흐트러뜨려야만 생두알 전체에 열기가 퍼지고 들이쉬는 숨이 코어를 관통해야 코어는 몸속 깊숙이 공기를 전달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설사 버틴다고 하더라도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려고 할 때는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몸을 슬쩍 기울어야만 중심을 잡고 몸을 지탱할 수 있다.

 소설을 읽고 소설을 쓰고 소설을 생각하고 소설을 통해 배우게 되는 것이 내 중심에 있어야 할 것이지만 동시에 나의 소설, 내가 생각하는 소설인 한에서 그것은 내 속에 들어찬 고정관념이나 정체된 것들을 흐트러뜨리고 세상으로부터 내게 오는 것들, 나를 관통해 세상과 나눌 수 있는 것들을 계속해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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