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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벽을 원한다.>

 

 

친구와 같이 살고부터 부쩍 나의 공간에 대한 소중함에 대해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오롯이 혼자 있다고 느끼는 공간을 가지게 된 것도 얼마 되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시골집의 구조상 나의 방이 따로 있지 않았고,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도 기숙사에 살았으니 “내”공간을 갖는다는 것이 나에게는 얼마나 절실한 일인지 모른다.

 

스물한 살 때부터 자취를 시작하고 (그 사이 사이 아닐 때도 있었지만) 나의 공간이 생겼을 때 느꼈던 아늑함과 외로움이 있다. 지금 나에게는 그 아늑함만이 기억에 남아서 어서 한시라도 빨리 독립된 공간을 만들라고 내 마음은 빨강 경고등을 반짝거리고 있다. 요즘의 나는 그 요구에 한시라도 빨리 응답해주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다.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은 몇 개월 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쌓인 스트레스들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이런 저런 이유들. 짜증이 날 때마다 나는 그 순간 생각하고는 했다. 지금 내가 짜증날 상황이긴 한 거야? 너는 정확하게 뭐 때문에 짜증이 난거야? 친구야? 아니면 그 행동이야? 외면하고 싶은 질문들이 자꾸만 이어졌다.

 

이사를 앞 둔 시점에 갈라서서 살지 못하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친구는 누군가와 살아야하고 나는 친구의 상황을 외면할 만큼 모진 사람은 아니다. 이제 그만 갈라서자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뱉을 수 없었던 몇 번의 순간들. 그 순간들을 참아낼 수 있었던 건 또 어떤 이유들 때문인 걸까. 친구라서? 어쨌든 난 지금도 친구와 살고 있다.

 

나 못지않게 친구도 힘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같이 술을 마실 때면 자기의 힘듦을 나에게 토로하기도 하고, 이사 갈 집을 볼 때 먼저 무조건 방이 두 개인 집을 구하자고 한 것을 보면 말이다. 그게 아니더라고 내가 생각해도 별난 나의 성격을 받아주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보통일은 아니었을 테니까. 고맙기도 하다.

 

결국은 지금 서로에게는 각자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굳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할 것들 중 하나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나, 그리고 나의 친구, 어쩌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내 안의 나에게 주파수를 맞추고 싶은 순간, 그런 시간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빈도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 빈도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 같은 요 몇 달, 이게 바로 그 별 것 아닌 이런 저런 이유이라고 써놓은 단 하나의 이유인 듯하다. 나는 지금 간절하게 벽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