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면 세 식구는 등유 램프 한 개로 불을 밝힌 작은 부엌에 앉아 노란색 불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10

 

““가끔 밭일을 하다가 드는 생각이 있는데…….”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깍지 낀 손가락에 점점 힘이 들어가더니 두 손이 식탁 위로 툭 떨어졌다. “무슨 생각이냐면……” 그는 자신의 손을 향해 험상궂은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12

 

슬론이 말했다. “자네는 이 폐쇄된 공간에서 이른바 세상이라는 곳으로 나가는 날을 고대하고 있나?”

-30

 

그가 말했다. “대학은 보호시설이야. 아니, 요즘은 그걸 뭐라고 하더라? 요양소, 환자, 불평분자, 그 밖의 무능력자들을 위한 곳. 우리 셋을 보게, 우리가 바로 대학이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한테 공통점이 많다는 걸 모르겠지만, 우리는 알지, 안 그래? 우린 아주 잘 알아.”

-44

 

패배를 슬퍼하며 울던 아처 슬론의 모습이 생각났다.”

-63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자 그는 자신과 그녀가 타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 그런 느낌을 갖게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는 또한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확신했다.

-77

 

한 달도 안 돼서 결혼 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 그는 침묵을 배웠으며, 자신의 사랑을 고집하지 않았다.”

-106

 

검시관은 심장마비가 사인이라고 선언했지만, 월리엄 스토너는 슬론이 분노와 절망의 순간에 자기 의지로 심장을 멈추게 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뿌리부터 배신당해 더 이상 참고 살아갈 수 없게 된 그가 마지막 순간에 세상을 향해 사랑과 경멸을 드러낸 것 같았다.”

-123

 

그는 한참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메모와 펼쳐진 책들이 흩어진 책상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서재를 가로질러 책상 위의 종이와 책들을 멍하니 정리했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린 채 뭔가를 기억해내려는 사람처럼 몇 분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돌아서서 그레이스의 작은 책상으로 다가가 자기 책상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 한동안 서 있었다. 그가 그곳의 스탠드를 끄자 책상이 회색으로 변하면서 생기를 잃었다. 그는 소파로 가서 눈을 뜬 채로 누워 천장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172

 

스토너는 자신이 가져온 책을 생각해내고는, 여전히 양손으로 꼭 쥐고 있던 그 책을 커피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지금은 힘들지도 모르지만……” 그가 말했다.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을 우연히 발견해서……”

-269

 

장기적으로 내다봤을 때, 날 이 자리에 붙들어둔 것은 이디스도 아니고 심지어 그레이스도 아니오. 반드시 그레이스를 잃을 것이라는 사실도 아니지. 당신이나 내가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생각이나 추문 때문도 아니오. 우리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라는 사실 때문도 아니고, 어쩌면 사랑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도 아니오. 그저 우리 자신이 파괴될 것이라는 생각, 우리의 일이 망가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지.”

알아요

그러니까 결국 우리도 세상의 일부인 거요.”

-303

 

스토너는 그레이스가 직접 말했던 것처럼 절망을 거의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레이스는 해가 갈수록 술을 조금씩 더 마셔서 공허해진 자신의 삶에 맞서 스스로를 무감각하게 만들면서 하루하루를 조용히 살아갈 터였다. 그는 그녀에게 적어도 그런 생활이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351

 

! 나는 살아있어.”

-353

 

그는 우정을 원했다. 자신을 인류의 일원으로 붙잡아줄 친밀한 우정. 그에게는 두 친구가 있었지만 한 명은 그 존재가 알려지기도 전에 무의미한 죽음을 맞았고, 다른 한 명은 이제 저 멀리 산 자들의 세상으로 물러나서…… 그는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결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열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열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열정이 죽어버렸다. 그는 사랑을 원했으며, 실제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포기하고, 가능성이라는 혼돈 속으로 보내버렸다. 캐서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캐서린.”

 그는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지만, 거의 평생 동안 무심한 교사였음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388

 

이 책이 망각 속에 묻혔다는 사실,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책의 가치에 대한 의문은 거의 하찮게 보였다. 흐릿하게 바랜 그 활자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는 환상은 없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작은 일부가 정말로 그 안에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그를 가둬주기를, 공포와 비슷한 그 옛날의 설렘이 그를 이 자리에 고정시켜주기를 기다렸다.

-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