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 따르면 플로베르는 엠마 보바리의 겨울옷 가장자리에 묻은 한 알의 모래에서 사하라 사막 전체를 보았고, 미세한 모래알을 아틀라스 산맥만큼이나 무겁게 느꼈다." 17쪽.


"어쨌든 브라운의 서술을 읽다보면 그가 일체의 이성적 한계를 뛰어넘는, 무수한 자연의 돌연변이와 우리의 사고에서 탄생한 환상에 매료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런 점에서 그는 삼백년 뒤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다를 바가 없었다." 32~33쪽.


"브라운은 파멸을 이겨낸 것들에서 비밀스러운 환생능력의 흔적을, 그가 애벌레와 나방에서 자주 관찰할 수 있었던 그 환생능력의 흔적을 찾고자 했다." 37쪽.


"실제로 이제 해변에서 무언가 잡아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난날 어부들을 태우고 해변에서 출항하던 보트들은 수지가 맞지 않게 된 뒤로 사라졌고, 어부 또한 멸종되었다. 어부들이 남겨놓은 흔적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기저기 주인을 잃은 조각배들이 허물어진 곳마다 배의 묘지가 불쑥 튀어나오고 한때 배를 육지로 끄는 데 사용되던 권양기들이 소금기 섞인 바람에 녹슬어간다." 68쪽.


어부가 멸종되었다는 것. 그것은 쇠락한 어촌의 풍경을 가리킨다기보다 차라리 이야기꾼이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부는 수평선 너머 '먼 곳'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람이다. "한 사람이 여행을 하면, 그는 뭔가를 이야기를 할 수 있다"(발터 벤야민, <이야기꾼>) 이야기꾼은 먼 곳에서 온 사람이다. 무언가를 가지고 육지로 돌아오는 사람. 어부가 없으니 먼 곳으로 나가는 사람도, 돌아오는 사람도 없다. 해변에 늘어서 있는 텐트 모양의 천막은 묘지에 가깝다. 육지와 바다가 교차하는 해변이라는 경계에 텐트를 치고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행위는 멸종된 어부들에 대한 '애도'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기도 하다. 

바다를 가득 채웠던 청어들. 시시각각 변하는 수수께끼 같은 빛깔을 흩뿌리며 유영하던 그 셀 수 없던 물고기들은 '세상의 이야기'를 닮아 있다. "죽은 청어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발광물질에서 지속적으로 저절로 재생되는 유기적인 광원을 추출해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던 19세기 과학자들의 꿈은 오래전 어부들의 꿈이었고 더 먼 과거의 이야기꾼들이 꾸었던 꿈이었을 것이다. 


"꿈에서 본 것이 이상하게도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면, 이는 아마도 파묻힌 기억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꿈속에서 다른 무언가를, 흐릿하고 뿌연 어떤 것을 통과하면 역설적이게도 모든 것이 훨씬 명료하게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은 물방울이 호수가 되고, 미풍이 폭풍으로, 한줌의 먼지가 황야로, 유황 입자 하나가 분출하는 화산으로 변한다." 97~98쪽.


** (외우고 싶은 구절)


"1644년 5월, 그러니까 내가 태어난 해로부터 정확히 삼백년 전에 치러진 낙성식 때는 포석이 깔린 새 건물 앞의 광장에서 총독이 브라질에서 데리고온 열한 명의 인디언들이 춤 공연을 펼쳤고, 모여든 시민들은 그들 공동체의 권력이 이제 얼마나 먼 나라까지 확장되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공연기록 외에는 어떤 다른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은 이 무용수들은 이미 그림자처럼 소리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102~103쪽.


*** 대항해 시대, 유럽으로 끌려온 브라질 원주민들은 먼 이국 땅에서 잠깐 무용수가 되었다가 사라져버렸다. 지금, 이곳에도 '브라질 원주민'이 있을 것이다. 그림자처럼 소리없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있다'. 그 사실을 누구도 모를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