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고, 뒤표지에 눈길을 줍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다’란 문장이 또렷이 보입니다. 저는 그 문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 말은 저도 ‘스토너’라는 말이 되니까요. 그건 맞지 않습니다. 그 시절 ‘평범’했던 ‘보통’의 인간 스토너의 이야기는, 지금에 와선 ‘특별한’ 인간의 이야기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평범’한 제가 ‘특별한’ 스토너가 될 수 있을 리가요. 

 

사실 저도 처음부터 ‘특별함’을 꿈꾸지 않은 건 아닙니다. 애초에 제가 자란 시기는 온갖 ‘특별한’ 영웅들이 막 활동을 하기 시작한 때와 같으니까요. 어린 시절 제 첫 영화였던 해리포터만 보더라도 ‘보통’의 아이가 알고 보니 ‘선택’받은 아이였다는 식의 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 영화를 보고 나와서 ‘윙가르디움 레디오사’를 한번이라도 되뇌어보지 않은 아이, 몇 없을 겁니다. 게다가 평범한 학생이었던 소년이 우연히 거미에게 물려 영웅이 된다는 식의 스파이더맨까지 더해진다면, 저의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그 순간’만을 기다리던 인내의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어떤 ‘순간’도, 제게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착각조차 없었죠. 그러니 ‘그 순간’이 찾아온 스토너는 저와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들어버렸거든요. 아처 슬론(볼드모트, 슈퍼거미)에게 “스토너 군, 이 소네트의 의미가 뭐지?”(20쪽)라는 물음을요. 그리고 그는 변합니다. ‘특별한’ 인간으로 말이죠. 그의 능력은 ‘햇빛이 뺨의 솜털에 붙들려 있’(22쪽)는 걸 볼 수 있는 능력이며, ‘작고 작은 정맥과 동맥’(22쪽)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어떤 분들에겐 정말 보잘 것 없는 능력이겠지만, 글쎄요, 저에겐 부러운 능력일 따름입니다.

 

그러니 이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저에게는 ‘그 순간’, 그러니까 ‘특별한’ 인간이 될 수 있는 순간이 오지 않았는지. (분명 저 또한 수많은 문제집에서 ‘위 시의 의미는 뭔가’라는 물음을 들었는데) 왜 저는 ‘스토너’가 될 수 없었는지 말입니다.

 

사실 ‘아주 간단한 이유’(32쪽) 때문이란 거, 알고 있습니다. 사랑. ‘평범’한 사람도 ‘비범’하게 만들어 주는 그 ‘사랑’이 사치와 낭비가 되어버린 세상에 저희가 살고 있기 때문이란 걸요. 기본적인 생활여건을 보장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사치와 낭비는 죽음과 가장 가깝게 연결됨을 알기에 우리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살아야 하니까요. 우리가 ‘특별해’지는 법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모른 척 한 겁니다. ‘그 물음’을 못들은 게 아닙니다. 못들은 척 한 겁니다. 최근 이뤄진, ‘사랑’에 몸 바친 젊은이들을 ‘구조’하라는 세상의 명령. 그에 따라 대학은 ‘구조’조정을 실시했고, 우리는 똑똑히 봤습니다. 사랑에 몸 바친 젊은이들이 어떻게 됐는지. 이미 우리는 ‘사랑’과 ‘구조’를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너무 많이, 알아버린 겁니다.

 

 

  ⓒ경기대 학생들이 ‘구조’받고 있는 모습

 

“장기적으로 내다봤을 때, 날 이 자리에 붙들어둔 것은 이디스도 아니고 심지어 그레이스도 아니오. 반드시 그레이스를 잃을 것이라는 사실도 아니지. 당신이나 내가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생각이나 추문 때문도 아니오. 우리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라는 사실 때문도 아니고, 어쩌면 사랑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도 아니오. 그저 우리 자신이 파괴될 것이라는 생각, 우리의 일이 망가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지.”

“알아요.”

“그러니까 결국은 우리도 세상의 일부인 거요.”, 303쪽. 

 

스토너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세상의 일부라는 걸. 하지만 스토너 시대의 ‘평범’이 우리 시대의 ‘특별함’으로 읽히는 만큼 그가 말한 ‘망가짐’의 정도도 다르겠죠. 어쩌면 그가 보기에 우리는 이미 망가져있는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적어도 사랑을 시작하고 포기할 선택권이라도 있었으니까요. 우리에겐 그마저도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글을 쓰는 사치와 낭비를, 어찌 이해해야 할까요. 대체 전 “무엇을 기대했나”요.(390쪽)

 

저기,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아이가 영화관에 들어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안에는 많은 어른들이 있고, 그보다 많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커다란 스크린엔 붉은 글씨로 매진이라 적혀있고 아이는 울상을 짓습니다. 꼭 이 영화를 보고 싶다 말하는 아이를 위해 엄마는 무얼 해주었을까요. 알 순 없지만 아마 혼자서 버스를 타고와 뒷날 영화표를 구해둔 듯싶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아이의 손을 잡고 당당히 상영관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아이는 자리에 앉고 옆에 앉은 엄마는 아이의 손을 팔걸이에 올려 마주잡습니다.

 

불이 꺼집니다. 곧 영화가 시작되네요. 하얀 화면이 켜지고, 어깨가 굽은 할아버지가 말을 건넵니다. “아직도 모르겠나? 그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32쪽) 

 

‘15.12.13

 

 

박세진

어린 시절 벽에 걸린 별과 산을 봤다. 언제고 다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15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