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목 안을 촬영했다. 소독약 맛이 나는 렌즈와 혀에 달라붙는 거즈는 유쾌하지 않지만, 외계인에게 습격을 당하는 느낌에 가까운 후두내시경보다는 훨씬 낫다. 내 몸인데도 볼 수 없는 어떤 부분, 아파도 보이지 않으니 돌보지 못했던 곳들을 생각해본다. 어디 몸 뿐이랴, 마음도 마찬가지. 모두 ‘나'이긴 한 것 같은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 시간이 지날 수록 늘어만 간다. 


촬영이 끝났다. 3개월 전이었을 거다, 다니던 병원의 무책임한 치료를 참지 못하고 이 병원으로 옮겼던 날이. 그 날 찍은 영상을 현재의 영상과 대조해본다. 첫 진단은 성대용종이었다. 수술과 비수술적 치료의 경계에 있던 그 상태를 보고 나는 처음 보는 의사 선생님 앞에서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흔행님(선생님), 저 후훌(수술) 꼭 해야돼요?”를 몇 번이나 물어봤던지. 목이 아파서가 아니라 ‘수술'이라는 단어가 너무 무서웠기 때문인데, 그 순간 엄청나게 당황하시며 “괜찮아요, 괜찮아요, 음성치료 먼저 해보고 경과를 봅시다.”라고 하셨던 여름이 기억났다. 그 때에 비해 확연히 작아진, 이제는 정말 ‘결절'이라고 불러도 될만큼 줄어든 '덩어리'의 상태에 대해 선생님은 굉장히 기뻐하셨다. 말을 안 할 수 있는 상태를 잘 유지한 덕에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고, 조금 힘들겠지만 약간만 더 노력해보자고 하셨다. 


많은 것들의 균형을 잃은 상태로 돌아왔던 부산. 다음주면 돌아온지 1년이 된다. 돌아오기 전에 다녔던 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지금처럼 제 멋대로 굴면 다 낫는데 1년은 걸릴 겁니다. 아니, 더 걸릴지도 모릅니다.”하며 늘 나를 혼냈다. 내 멋대로 군 것은 아니었지만 모든 상황이 제 멋대로 굴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 바퀴를 붙든 채로 허겁지겁 끌려가느라 신발 밑창마저 닳아버린, 어쩌면 그냥 모든 의욕을 잃은 채 그 바퀴에 매달린 채로 구르고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땐. 언제나 따스하게 대해주는 마음 편한 이들과 정 든 공간들도 분명히 있었지만,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깨져버린 몸의 균형, 바닥나버린 정신력, 이미 불타버린 다리 마냥 회복하기 어려울 것 같은 관계들이었다. 그 관계들 중에는 화해하기를 포기해버린 나 자신과의 관계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에게 다치면 그 상처를 사람으로 풀 엄두가 안난다. 그래서 사람들을 떠나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냥 딱, 0으로 돌아가기. 더했던 것들이 사라지는 것도 감수하고, 덜한 것들이 회복되는 시간을 주는 것. 그러니까, 100도 아니고 0이면 족하다라고 생각한 것 같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떠났던 나의 옛 방, 도망자의 맹세란 참으로 부질없구나. 그렇게 돌아온 날부터 한 달이 지날 때까지 꾸었던 악몽들은 내가 잃어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곤 했다. 0으로 돌아가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웠다. 속수무책으로 가만히, 그 고통을 보고만 있어야했다. 반면 예상치 못한 관계들, 관심 밖이었던 주제들과의 만남들이 상처가 되기보다는 회복을 돕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 병이 낫기 전까지는 절대 갚지 못할 것 같던 빚도 얼마 전에 0이 되었다. 내 삶을 측정하는 여러 지표들 하나 하나가 초기값으로 돌아가고 있다. 목 안에 있는 '덩어리' 역시 마찬가지로 0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문득 두려워진다. 0은 도착지가 아니니까.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는 상태에 놓인다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나, 그런 너 자신을 좋은 동반자라 여기며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답이 없다. 


한 구석에 있던 우쿨렐레를 꺼내들었다. 어마어마한 두려움이 몰려올 때마다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홀로 나직이 불렀던 노래들을, 오래간만에 연주했다.


2015.10.27.


YKSQZME(익스큐즈미)

잡종.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밥.’ 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경제학을 공부했고, ‘그 밥을 여기저기 퍼나르는 방법은? 미디어.’ 라는 결론을 내리고 미디어를 더불어 공부했다. 밥을 실어나를 마음에 쏙 드는 미디어를 찾아 헤매다보니 기획자와 교육자와 디자이너와 개발자를 잇는 사각형 안팎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걸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편식 및 리셋 증후군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보니 주변 사람들에게는 필연적으로 Excuse me하며 사과할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