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13일 화요일은 <생활--쓰기모임> 2기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몇 주간의 휴식기를 보내고 난 뒤에 가진 만남이지만 <생활--쓰기 모임>1기의 마지막 날로부터 무려 한 달 만에 만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휴식의 시간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오후 4시 넘어서까지 글을 붙들고 있었지만 힘들지는 않았다. 평소보다 일찍 <지생자>에서 나와 중앙동 잠게스트하우스로 가는 버스를 탔다. 수영에서 51번을 타고 경대 앞에서 내려 40번으로 환승을 하고. 저녁시간이라 차 안은 붐볐다. 지난 여름 동안 모임에 가는 길에서 차 안에서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 삼각김밥과 샌드위치를 급하게 우겨넣기도 하고 바로 코 앞에서 차를 놓치고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타기도 하고 글을 쓰지 못했던 날의 그 불편했던 마음, 후기는커녕 밀린 일기를 쓰듯 그간 들여다보지 못했던 카페의 글들을 뒤늦게 확인하는 내 자신에 대한 자책과 한심함 때문에 무거웠던 마음. 이젠 제법 쌀쌀해져 벌써 겨울인가 싶기도 한 가운데 지독하게 덥고 피곤하고 허기지고 바쁘고 힘들었던 지난 여름의 날들이 떠올랐다. 오늘 혹시 <생활--쓰기 모임> 2기 첫 번째 만남의 여는 말을 모두 돌아가며 해보자는 제안을 김대성 선생님이 하는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하지,라는 생각이 잠깐 스치기도 했다. 그 때문에 허를 찌르는 듯한 긴장감이 온 몸을 쓸어내렸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며 앉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전에 없이 드는 여유로움이 신기하기도 하고 어떤 부담감이나 걱정 없이 편안하게 모임에 가는 것도 처음인 듯했다.

국제시장 입구에서 내려 잠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오후 여섯 시 십오 분 전, 용두산 공원을 지나는 길은 벌써 길은 어둑해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날씨가 더 추워지고 <생활--쓰기 모임> 2기가 진행되는 동안 이 시간의 이 길은 또 얼마나 어두워져 있을까. 그때쯤이면 길바닥에 짖니겨진 은행나무 열매도 사라지고 얄구진 냄새도 더 이상 나지 않겠지. 방언 터지듯 입에서 욕이 무심결에 튀어나올 만큼 날씨는 어마무시하게 추워질 텐데. 그때의 잠게스트하우스의 풍경과 모임을 마치고 나오게 우리의 모습은 또 어떨지가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다.

 

 

현정 씨를 만났다

 

2기 모임에서도 함께 할 김대성 선생님과 히요, 연화 씨, 경숙님을 만났다. 단순히 반갑다고만 할 수 없는, 감격스러움이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옆으로 난 계단으로 히요와 함께 내려오던 연화 씨가 코피를 흘렸다는 얘기에 잠깐 놀랐을 때 느껴졌었다. 코피를 흘렸다는 얘기에 놀라 반가움이 잠시잠깐 쑥 들어가 버렸는데, 핼쑥하고 창백한 연화 씨의 얼굴을 보면서도 주머니 속 전화기의 진동처럼 가슴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자리에 둘러앉은 이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옆옆자리에 앉은 경숙 님이 보이지 않아 앞으로 뒤로 몸을 숙이고 젖히며 흘낏 거렸던 것을 경숙 님은 아마 모르실 듯.

2기 모임에서 함께 하게 될 현정 씨도 만났다. 처음 본 얼굴인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낯설지 않은 이 느낌은 또 뭔지. 그래서 그런가, 어색함과 쑥스러움, 설렘,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걱정, 떨림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현정 씨의 모습이 유독 크게 다가왔다. 거의 미쳐 돌아갈 지경으로 긴장되던 감정을 억누른 채 앉아있었을 뿐 1기 첫모임 때의 나 역시 그랬었다는 생각이 들어 크게 박장대소 하고 말았지만, 그런 현정 씨의 모습에서 유쾌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감정이 묻어나는손글씨를 선호한다는 말도 인상적이었지만 특히나 쓴 글의 마지막 부분에 적힌 생각하자, 쓰자, 그리고 나누자라는 마지막 글귀에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렀다. 나누는 것, 그리고 좋은 독자가 되는 것. 1기 모임 첫 만남 때 얘기하고 속으로 다짐했었던 것이었는데, 습관처럼 글쓰기를 수행하는 것,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는 몸뚱어리가 되리라는 다짐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저절로 한숨이 내쉬어졌다. 그러니 깨달음이 있어도 나눌 수 없어 고독하다.’는 김대성 선생님의 말을 어찌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머리로는 이해되고 수긍이 가지만 일단은 뭔가를 깨달아야 하고, 나누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열심히 이야기를 건네는 일에 전심전력할 수 있는 에너지와 애씀이 나에게 있을까, 싶기도 하다.

 

끝을 생각하다니

 

그런데 어째서 나는 벌써 <생활--쓰기 모임> 2기의 마지막 시간을 생각했던 걸까. 2기의 첫 모임을 향해 가는 길에 생각했던 겨울 풍경과 <생활--쓰기 모임>과 나의 모습을 나는 왜 떠올렸던 걸까. 요즘 들어 어떤 일을 하든 언제나 과정 안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를 자자 되뇌곤 하는데, 그 사실을 또 잊어버리려고 하는 건가. 언제나 끝을 생각한다는,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는 김대성 선생님의 말에 전염이라도 된 걸까. ‘다른 시작,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는 김대성 선생님의 말처럼 나 역시 그런 고민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굳이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다짐하고 싶지 않았다. 1기 모임이 끝나갈 즈음, 딱히 잘못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내 생활, 삐그덕대고 아슬아슬한 내 생활과 남편을 포함한 내 가족과 만나는 사람들과 써야할 글들, 관계와 일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감당하기 힘들어 버거워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면서 생활글이란 무엇인가, 생활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뒤늦게 들었다. 생활에 글쓰기가 안착하도록 하는 것, 애초에 생활글쓰기 모임에서 이야기되기도 했던 이 목표를 다시 생각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글쓰기를 우선시 하려 했고, 그것을 먼저 생각하고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나의 큰 착각이었지 싶다. 2기 첫모임의 김대성 선생님의 글에서처럼 일정한, 제도적인 관습에 지배받을 수밖에 글, 글쓰기보다 생활이 훨씬 큰 영역, 더 높은 차원에 있고 제도와 관습이라는 한정적인 차원에 통제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일들로 얽히고설킨,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라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 조심스럽다. 여전히 생활에 글쓰기를 안착시켜야 한다는 목표는 유효하지만 글, 글쓰기보다 훨씬 힘이 센 생활, 그 무게를 조심스레 가늠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생활을 잘 건사하기 위한 글쓰기를 하는 것, 그러기 위해 내 생활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자는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다. 늘 과정 안에 있다,라는 것은 어떤 목표와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는 것에만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끝이라는 지점을 상상했을 때 더 잘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생활에 글쓰기를 안착시키자는 목표가 여지없이 실패로 끝난 것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라는 것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생활을 위한, 삶을 잘 건사하기 위한 글쓰기로 목표는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