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쓰기 모임 4: 다 적지 못한 글 (히요)

 

1. 고장난 컴퓨터

검은 화면에 안전모드로 윈도우 바탕화면으로 들어가겠냐는 질문도 없다. 시스템을 살펴본다고 하길래 다른 일을 하다 깜빡하고 이틀이 지나고 다시 컴퓨터를 보니, 꺼져있다. 하드디스크에 들어있는 중요한 자료들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에 더 이상 손을 대지 않고, 컴퓨터를 잘 만지는 k에게 연락했다. "오랜만에 연락하는데 염치불구하고, 컴퓨터 좀 물어보려구요.."로 시작된 문자로 나는 다시 그 친구의 도움을 받아 본체를 새로 하나 구입하기로 했다. 최근 희한하게 포토샵을 사용해야 할 일이 생기기 시작하는 조짐을 보니, 돈을 조금 들여서라도 컴퓨터를 고쳐 둬야하나 보다 생각했다.

 

수요일 점심시간, 43번 버스를 타고 법원으로 갔다. 근무시간이었는데 선생님도 외출중이어서 금요일에 일을 돕고 있는 m을 호출했다. 점심 손님이 없어서 시계만 보다가 1시가 되었다. 혼자 갈 마음도 굳게 먹고 있었는데 h와 함께 동행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지난 6월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해서 결국 보증금반환청구소송까지 하게 되었고, 6개월이 지난 지금 원고와 피고로 만나 조정위원과 재판으로 넘어가기 전, 조정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110만원을 꼭 돌려받아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집주인은 돌려줄 돈은 95만원이라며 계속 주장했다. 서로 항변을 하기도 하고 조정위원의 말을 듣기도 하면서 30여분동안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102만원으로 합의했다. 어째서 그 금액이 되었는지는 말하기도 치사해서 차마 못 적겠다. 그렇게 끝났다. 정말로 칠산동 집과는 이별했다. 아주 잠깐 눈물이 참을수 없이 솟았고 나는 손등으로 슬쩍 닦으며 그냥 울었다. 시원했다. 아니다 서러웠다. 나는 102만원을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돌려받았고, 그날 오후 엄마에게 바로 이체해주었다. 서류가 필요한 일, 계약서를 쓰는 일, 공적인 일에 있어서 증거를 남겨야 하는 것, 귀찮지만 앞으로 아마 더 꼼꼼하게 계산하고 챙길 부분이 생겼다. 아낌없이 나누고 베푸는 것도 울타리가 필요한 일이겠다고 생각하며 한 숟갈 더 먹은 어른이 되었다. 그 때, 컴퓨터를 맡긴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솔직히 말하겠다고 ... 자기가 컴퓨터를 받아오는 금액이 얼마이다. 나는 그것을 가지고 우리집에서 데이터를 안전히 옮기고 프로그램을 직접 깔아주는 작업을 할 것이다. 괜찮겠는가? 언제가 좋은가? 하고 군더더기 없는 주고 받음의 약속을 나누었다. 다방에서 다함께 쓰던 컴퓨터인데 내가 자주 사용하긴 했지만 챙겨온 것이 마음에 살짝 부채로 남았었는데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누구에게 갔어도 얼마안가 짐이 되었을테니 내가 가져오길 잘했다고. 조만간에 속도 빠른 컴퓨터로 슬슬 포토샵 일러스트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써서 조물조물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 보아야겠다.

 

목요일 근무가 끝난 저녁시간, 퇴근하지 못했다. 며칠 전 부탁받은 간단하지만 손이 가는 포토샵 작업을 다 끝내지 못했다. 집에도 컴퓨터가 고장났으므로 나는 자연스레 카페에 남아 작업을 하는 수밖에 없었고, 마침 출판사에 다니는 M이 포스터를 하나 만들어야 하는데 도움을 받고 싶다고 찾아왔다. 낮 동안 틈틈이 스캔 받고 이미지를 잘라두지 않았다면 12시까지 집에가지 못할 뻔 했다. 다행히도 모든 일은 10시 반에 마무리되어 흐느적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불목이었는데...(나는 주4일 근무자다.)다음날 대전으로 짧은 여행을 앞두어서 그랬나? 일을 너무 많이 했던가? 몸이 뻐근해서 쉽게 잠들지 못했다.

 

금요일 오전에 눈을 떠서 집을 청소하고 고양이 밥을 챙기고 가까이 사는 친구에게 24시간동안 고양이를 돌봐달라고 열쇠를 맡겼다. 간단하게 챙긴다고 했는데도 가방이 무거웠다. 오후 3시반 무궁화호를 타고 h와 함께 대전 산호여인숙으로 갔다. 2011, 생각다방산책극장이 만들어진 해에 대전에서도 재미난 게스트하우스가 생겼다. 대연동을 마무리 할 때, 놀러와 준 이후로 멀리 있지만 곁에 있다는 느낌만은 꾸준히 가져온 자매공간 같은 곳이었다. 내년 4월까지 운영을 하고, 다음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5년의 시간을 마무리하는 소극장 공연을 준비한 산호여인숙,

 

 

그리고 덧쓰지 못한 이번주 생활글. 더 섬세하게 살피고 적어두고 싶었던 리스트

 

2. 얄미워죽겠어, 감정섞임없는 이기

3. 대전에 다녀온일/ 산호여인숙

4. 올해의 생활

5. 법원 조정으로 드디어 끝난 보증금반환청구소송

 

다음에 마저 적어볼까? 생각만 한다. 대전에 다녀오기 위해 쉼터의 당직을 일요일로 바꾸었다. 일본에서 온 친구 메구미의 <부산일기> zine에 텍스트 번역을 도와주기로 했다. 물론 부분만 돕기로 했지만 시간이 와락 쏟아져버렸다. 내일은 퇴근하자마자 출근이다. 게다가 갑자기 온 문자 내일 오전에 수업이 있으니 9시반까지 출근을 부탁한다는 문자에 그냥 또 화가 불쑥 난다. 피곤한거겠지. 요새 나도 믿기 어려울 만큼 아주 자주 불화하는 마음들이 내 안에 너무 많다. 글로 적어 내보일수도 없이 부끄러운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냥 적어보자. 하다가도 비공개로 돌리고 만다. 나는 아직 감정을 밖으로 내놓을 만한 사람이 아닌가? 하고 숨는다.

 

사실 그래서 다 적지 못한 글이다.

 

 

 

다 적지 못한 글 _현정.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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