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쉼터에서 일어나 간단히 세수를 하고 옷을 다시 갖춰 입고 교대할 진희씨를 기다리면서 생활글쓰기 블로그에 들어갔다. 경숙씨의 글이 하나 올라와 있다. 삶의 재구성. 간밤에 올해의 리스트를 몇 가지 적어보았더랬다. 내친김에 연필을 쥐고 손으로 적었다. 적으면서 생각했다. 2016년에는 손으로 쓰는 시간만큼 ‘천천히’ 살아야겠다 하고. 일주일 전에 리스트를 생각하며 적어 둔 글을 먼저 옮긴다.
‘한 해를 돌이켜 나의 시간을 채운 것들을 정갈하게 리스트에 모으는 일은 어쩌면 애도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살아있고, 스스로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지만
들숨과 날숨이 만든 길 위에서
사라지는
나와 관계된 무엇을 기억하고
자리를 만드는 일,
나의 시간에 대한 애도. ‘
왜? 애도를 먼저 떠올렸을까? 2015년은 나에게 죽은 시간이라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적어 내려간 리스트.
1-올해의 음악
어떤 해에는 내가 들었던 음악을 씨디로 구워 친구들에게 연말 선물을 주기도 했는데, 올해는 마땅한 음악이 없었던 한 해 인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이라면 <토이-스케치북>
11월 산호여인숙 5년의 시간을 돌아보는 공연 말미에, 산호를 꾸려온 친구 지인 동료들이 한 무대에 올라 함께 부른 노래이다. 이 노래에 그렇게나 다양한 감정이 실릴 수 있다니! 눈물로 들은 노래. 어쩌면 그 순간 생각다방을 겹쳐서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가사를 다시금 곱씹으며 들어도 콕 찌르듯 찌릿하다. 옛날노래라서 유치한 가사라 말할지 모르겠다. 나에겐 올해의 곡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동안
어떤 색을 칠 할 수가 있을까
파란하늘처럼 하얀 초생달처럼
항상 그렇게 있는 것처럼
살 수 있을까
붓을 들 땐 난 고민을 하지
조그만 파레트 위에 놓인
몇 되지도 않는 물감들은 서로
날 유혹해
화려한 색칠로(멋을 냈지만)
들여다보면 어색할 뿐
고민 하지마
너 느끼는 그대로(너의)지금(모습)
솔직하게 그리면 되잖니
걱정하지는 마
니 작은 꿈들을(칠할)하얀(공간)
아직까지 충분해
편협했던 내 비좁은 마음
무엇을 찾아 헤매인걸까
내 옆에 있어준 소중한 것들을 잊은 채
현실이란 이유(그것만으로)
이기적인 삶 걸어왔지
고민 하지마
좀 잘못되면 어때(처음)부터(다시)
지우개로 지우면 되잖니
걱정 하지는 마 좀 서투르면 어때(그런) 너의(모습)
아름답기만 한 걸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동안
어떤 색을 칠 할 수가 있을까
나나나나 나나나
https://youtu.be/6b8SC4zgdwk?list=RD6b8SC4zgdwk
2-올해의 생활
커피를 많이 마심/택시를 타고 자주 출근/술도 꽤 마신 듯/외식이 절반/운동안함/
넋놓고 있기 일쑤/기억에 남는 휴식은 손꼽힘/이삿짐 싸기,풀기/10시출근-6시퇴근/
매주 토요일 24시간 당직
앞으로 단 한번을 남긴 당직 알바. 지난주 쉼터 사무실에서 잠들 때 생각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차곡차곡 모으니 빠진 날을 제외하고도 한 달 반의 시간이다. 그렇구나.. 내가 스페인 순례길을 걷고, 쿠바에서 보낸 밤들만큼이나 긴 시간이었다. 결코 무의미하게 그냥 반복된 시간이 아니다. 나는 분명히 얻고자 하는 게 있었다. 1년 내내 솔직히 끝을 바라보고 참고 견딘다는 마음으로 하찮게 보기도 했던 시간이다. 왜 1년이 지난 지금, 그게 다가 아니었다고 알게 된 거야!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더 기껍게 할 수도 있었던 일이었거늘...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느꼈던 허무함, 다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똑같이 밀려온다. 1년 동안 더 친밀하게 말을 섞지도 못했던 나와의 딱! 그만큼의 관계만큼... 마음 끝이 저리다.
3-올해의 감정
우울하다, 무기력하다, 화가나다, 밉다, 사랑하다, 받아들이다, 고맙다, 조금만 더, 견디다, 잠시만,
4-올해 내가 품은 말
꼭 붙잡으십시오.
5-올해의 질문
우리가 살면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절실하다고 생각되는 다섯 가지는 무엇인가?
1. 깨어있는 나
2. 진짜를 서로 나누는 우리들
3. 행복
4. 이완
5. 예술
6-올해의 장소
법원: 보증금반환청구소송이 남긴 장소... 책임과 의무 그리고 권리를 배웠다.
나유타: 채식, 각자의 몫과 책임, 가능성, 상상력이란!
백년어서원: 다시 재회하는 관계, 생활력, 인정, 공적인 것.
살림 쉼터: 아픔과 상처를 대면하는 나, 지루함과의 싸움, 유일한 나 혼자만의 시간
생각다방산책극장 칠산동: 지속가능한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질문을 남겨준 곳.
산복도로: 낯설다, 복잡한 밀접한 집들처럼... 던져진 관계라는 숙제.
김현호: 가장 다양한 모습과 행동과 감정을 드러낸 자리. 내가 살아 숨 쉰 곳.
7-올해의 절망
머뭇거렸던 수많은 날들.
놓친 것 못한 것 아쉬운 것 힘들었던 일 그대로 깨어나고 싶지 않았던 밤...그런것만 떠올리다가 진희씨와 2015년 쉼터에서 마지막 수다를 나누며 생각의 방향을 바꿨다. 앞으로 내가 집중해야할 일과 미움 받을 용기와 자연스러움을 더 믿고 움직이자고 다짐하면서 올해를 되짚어 보는 것은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나는 이미 2015년을 보내버려서 송년회 같은거 안해도 된다고 말했더니 엄마가 불쑥 했던 말이 기억난다.
“ 아무리 그래도 지금이 최고야. 지금도 지나면 아쉬울 걸. 다시없다~” 새겨들을 말이다.
+
생활-글-쓰기 모임 멤버들,
어두운 시골 길 반딧불이처럼 올 한해 나의 마음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었답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 새해 복 많이 받아요^_^* 고마워요. 많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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