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안부를 물을 때, 부정적인 이야기가 들려오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 마음들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안부를 묻는 행위는 상대방이 무탈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 짧은 기도 같기도 하다. 상대방의 삶의 앞에 서서 작은 소리로 노크를 한 후, 잠시 들어가도 될런지를 묻는 조심스러운 행동이라는 점 역시 안부가 가진 특성이다. 하지만 그 선한 마음을 담아 내는 작은 소리에 누군가는 화들짝 놀란 나머지 자던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다리가 부러질지도 모르고, 맨 손으로 끓는 냄비를 붙들지도 모르고, 자르고 있던 양파를 붙든 손가락을 함께 잘라버릴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내는 작고 속삭이는 음성이 어떤 이에게는 천둥처럼 울리기도 한다. 적어도 한 때, 세상과도 같던 이의 음성이라면 더더욱. 


기억에는 저마다 머무는 방이 있다. 각각의 방에는 관찰자인 나의 이름이 하나씩 들어가 있고, 어떤 기억의 방에는 몇 몇 사람의 이름도 함께 머문다. 그리고, 그 모든 방의 한 가운데에는 기억들의 거실이라고 할만한 추억의 방이 있다. 어떤 기억의 방에 들어찬 이름들은 추억의 방에 초대되어 자신들의 이름을 있는 힘껏 팽창시키고 다시금 본디 있던 자리에 걸맞은 크기로 줄어든 후 퇴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입장과 퇴장이 이어지는 문이 달린 한 구석에, 한 사람의 이름이 무더기로 쌓여있다. 그는 때때로 모든 추억의 공간을 가득 채울 정도로 늘어나기도 하지만 다른 이름들이 가득 자리를 채우면 한껏 웅크린 채 납작해질 줄도 안다. 스프링 같은 그 이름을 나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억의 방들 여기저기에서 주워 모았다. 작은 박스에 꾹꾹 눌러 담은 후, 누구도 뜯을 수 없는 테이프로 단단히 봉해두었다. 모든 것이 깔끔하고 정돈된 상태, 완벽했다. 적어도 삐죽 튀어나온 스프링의 끝이 지난주에 테이프를 끊어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인정사정 없이 추억의 방 안으로 튀어나가는 이름들을 보며 한 동안 멍했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이 온통 그의 이름 뿐이었다. 문득, 이것은 반칙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참으로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다. 메시지를 보고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아마 지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의 다정함이 나에게는 날을 세운 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가 함께 만든 모든 것들에 커다란 구멍을 내고서 홀로 걸어나갔던 사람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그런 그의 참으로 다정한 안부가 3년만에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본 날로부터 3년이나 멀어져 있는 나를, 그가 그리워하고 있을 리는 없다. 이제는 잊혀져가는 순간에 대해 그가 사과하고 있을 리가 없다. 미안해하는 대상도 3년 전의 나, 그리워하는 것도 좋았던 시절의 어떤 순간일 따름이다. 과거를 향해 묻는 안부가, 지금의 내게 잘못 도착했다. 잘못 도착한 우편물은 반송함에 넣어야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수취인의 이름만 보고 봉투를 뜯어버렸다. 흩어진 스프링 중 하나가, 둘이, 셋이, 아니 넷, 다섯, 무수히 많은 쇳조각들이 자신이 머물렀던 기억의 방 어딘가로 통통 튀어가는 것을 무력하게 보고 있는 동안 웃음이 울음으로 흐르기도 했고, 울음이 웃음으로 쏟겨버리기도 했다.

여전히 환영처럼 보이는 장면들과 환청처럼 들리는 소리들에 둘러싸인 채 연말 분위기로 들뜬 시내로 향했다. 과거의 기억보다는 내일로 다가온 여행에 집중해야겠다, 하는 다짐을 했기 때문에 감행한 외출이다. 필요한 것들 중 하나를 남겨두고 길을 걷고 있던 중, 발 위에 느껴지는 사람보다 무거운 어떤 무게. 아, 내가 누군가의 차 아래에 실수로 발을 넣었나보다, 운전하는 사람이 당황해서 화를 내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하며 자리를 피했다. 급히 달려온 운전자가 내게 명함을 내밀고 꼭 연락을 달라고 했다. 다리를 절며 집에 들어온 내게 가족은 화를 내며 병원으로 데려가주었다. 안부가 부른 사고였다. 나는 '잘 지내고' 있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었다,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를 오래간만의 안부를 묻는 이에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곤란했다. 응급실에서 간략한 문진을 하며 3년 후의 정확한 위치 - 나이로 치자면 29살임을 확인한다, 엑스레이를 찍으며 내가 집중해야 할 것들을 되새긴다, 기분 나쁜 고통이 찾아올 때마다 내가 여기에 존재함을 확인한다. 3년 전의 내가 되어 그 때의 마음처럼 그리움의 답을 돌려줄 수는 없음을 깨닫는다. 어쩔 수 없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예의 바른 연말 인사만을 전한다, 작은 일이 있어 답이 늦었다는 말과 함께. 

다시, 무수한 기억의 방으로 튀어들어간 스프링들을 찾는다. 그나마 가까운 곳에 있는 마지막 방부터 문을 연다. 마지막 통화를 마치고, 그가 남겨둔 칫솔과 아이팟, 폴라로이드 사진과 같은 모든 것을 박스에 넣고 있는 내가 보인다. 함께 쓰던 통장 잔고를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 그의 계좌로 입금하는 나도 있다. 다음 방 앞에서는 열까, 말까, 망설이게 된다. 화를 내는 나의 앞에, 끝없이 사과를 하고 있는 그가 보인다.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며 나는 한껏 웅크린 스프링 같은 그를 줍는다. 연이 날아오르고 색종이가 흩어져있고 노래가 흐르는 몇 개의 방을 지나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열차에서 말 없이 입만 맞추고 있는 두 사람을 본다. 여기는, 남겨둘까? 옆 방, 가장 좋아했던 집이다. 해가 잘 드는 오후, 각자의 무릎에 노트북을 얹은 채 남자는 새로 생각난 서비스가 있다며 코드를 만들고, 여자는 그 옆 자리에서 다음날의 수업에 쓸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지나가기만 해도 미소가 옮아오는 방 몇 개를 스쳐 그 해 3월, 인사동의 한 가게에서 잘 익은 매실주를 한 잔씩 마시고는 들뜬 두 사람이 종로를 걷는다, 한 사람의 생일이다. 모든 것에 '다행이다'를 연발하는 목소리들을 지나, 눈 쌓인 새해 첫 날도 있다. 한 사람이 고안해 낸 종이와 연필로 하는 놀이 하나에 다른 한 사람은 신이 나 보인다. 

이제 조금 더 가면 첫번째 방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지금은 누구도 갈 수 없는 한 가게에서 상기된 얼굴로 카드와 선물을 내미는 두 사람이, 곧 사라질 풍경처럼 웃고 있다. '잘 지내나요?' 하는 질문은 소리내어하지 않는다. '저 역시 그리웠습니다'라는 말은 마음으로만 했다. 어느 새 손에 쥔 쇳조각들이 내 손만큼 따뜻해져있음을 깨닫고는, 머쓱해진 채 문을 닫는다. 


YKSQZME(익스큐즈미)

잡종.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밥.’ 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경제학을 공부했고, ‘그 밥을 여기저기 퍼나르는 방법은? 미디어.’ 라는 결론을 내리고 미디어를 더불어 공부했다. 밥을 실어나를만한, 마음에 쏙 드는 미디어를 찾아 헤매다보니 기획자와 교육자와 디자이너와 개발자를 잇는 사각형 안팎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걸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편식 및 리셋 증후군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보니 주변 사람들에게는 필연적으로 Excuse me하며 사과할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