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그들은 세월을 통해 자연스럽게 포기를 배웠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자신들을 위해서 뭔가를 열심히 하지만 치료가 아닌 간단한 서비스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때문에 이곳의 모든 것들을 무능하게 느꼈고 모든 자극에 무감하게 반응했다. 지속적인 통증과 지루함을 견디며 만들어진 눈썹 사이의 단단한 주름과 굳게 다문 입술, 이따금 분출되는 분노와 히스테리는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나누어 갖는 인격과도 같았다.     -51,52

 

삶이 무의미 하게 느껴지고 무력한 것만큼 끔찍한 것은 없다. 그 무력함속에 휩싸이면 혼자힘으로 빠져나오기가 참 쉽지 않다. 평생 나를 옴싹달싹 못하게 만들었던 무기력.

 

 

그의 식욕은 왕성했고 눈에는 식탐이 가득했다.    -56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식탐이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그 모습이 정말 싫다. 아니, 식탐이 있는 사람을 이유없이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서 가끔씩 식탐이 발견되기도 한다.

 

 

기억도 추억도 원망도 없어요.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용서할 생각도 용서를 할 입장도 아닙니다.   -58

 

과연 원망이 없을까. 나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아버지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아서 그렇지, 아마 같은 공간에서 매일 봐야 했다면 꽤 끔찍했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 인생을 사시고, 난 내 인생을 살겠습니다 이야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안 부딪힐때의 이야기인 것 같다. 아마 내 안에는 어린 아이에 대한 아버지상의 부재가 갖는 원망, 분노, 슬픔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린........ 혈육이 아니냐.     -59

 

참 복잡한 생각이 드는 말이다. 혈육에 연연해 할 필요는 없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앞에 혈육이 나타날때가 있다. 없는 것으로 여기기 보다, 나는 그 혈육에 대한 감정이나 태도가 어떤지 읽어내는 것은 필요하다. 물론 아버지에 대한 화해를 꼭 내 생애에 해야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용서와 화해는 미워하고 원망할만큼 실컷 하고 난 후에 나이가 들어서 해야 본인에게도 좋다고 생각한다.

 

 

<미드 윈터>

 

그때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저 의자에 앚아 있거나 침대에 누워 있을 수밖에. 그냥 견디는 거야.     -90

 

나에게 견디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스웨던의 긴 겨울날씨는 사람을 압도해버릴 것 같다. 그 긴 어둠속에서 할 수 있는게 얼마나 있을까. 나는 버티고 견디기 보다는 많은 시간을 도망쳤었다. 삶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그냥 견디는 것, 그냥 버티는 것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지 모른다. 삶은 버텨내고 살아내는 것이다.

 

 

<이국의 소년>

 

모욕감을 느꼈고 자신의 호의가 무시당한 것만 같아 견딜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150

 

내가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풀때 그 사람이 그 선의를 알아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상대가 그 선의를 못느낄수도 있고, 나에게는 선의이지만, 그 사람에겐 불쾌감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는걸 늘 인지해야 한다. 그러니, 내 선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상대에게 분노를 표하거나, 원망하는 것은 내 문제를 상대에게 투사하는 것일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안부>

 

힘을 내야 한다, 다 잘될거다, 같은 희망적인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남들이 내게 했던 그런 위로가 얼마나 쓸데없는지 잘 알기에 그냥 침묵했다. 헤어지기 직전 그녀가 물었다.

앞으로 가장 힘든 게 뭘까요.

나는 말했다.

곧 사람들은 다 잊을 거예요. 그것에 대해 서운해하거나 화내면 힘들어져요.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아들을 믿으세요.

 

 

누군가에게 응원을 하고 위로를 한다는 건 무엇일까. 세월호를 기억하고, 그 사람에게 응원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얼마나 소용있을까. 만덕에서 행정대집행을 막기위해 철탑에 올라간 분을 위해 내가할수 있는건 무엇일까. 그런데, 막상 그곳에 자주 가거나, 크게 관여하는 건 꺼려하는 내 모습은 무엇인가. 결국 내 위로는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고.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뭘 할 수 있는지, 그 한계는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