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가 내 구두를 탐낸 거라면, 그래서 바꿔 신고 간 것뿐이라면 그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고작 구두 한켤레쯤은 없어져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전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 여자가, 자기가 나인 줄로 착각하고 내 구두를 신고 갔다고 말이에요."

_<구두>, 26쪽


* 누가 손님이고 누가 주인인가? 손님의 자리도 주인의 자리도 위태롭다. 그렇게 자리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에서 우리는 무엇을 먼저 보는가. 희망인가, 절망인가


"약국 문이 열리며 종소리가 울리자 그는 그녀를 향해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그녀는 오년간 꾸준히 오메가3와 비타민을 구매해온 동네 단골이었다. 그의 약국에서 클로렐라, 유산균, 프로폴리스, 글루코사민, 스피룰리나를 주문한 첫 손님으로, 누구보다 의약품계의 유행을 충실하고도 열정적으로 좇아왔다."

_<오가닉 코튼 베이브>, 54쪽


*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로 전환해보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도입부다. 


"그녀가 세상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그에 반응하면 할수록 그녀는 점점 더 강력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중략) 안전한 먹을거리로 식탁을 채울수록 그녀의 꿈은 점점 더 잔혹해져만 갔고, 밤의 악몽은 그녀가 유기농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_<오가닉 코튼 베이브>, 60~61쪽


*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은 실낱 같은 동앗줄에 자신을 의탁한다. 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 낡고 얇은 동앗줄이라는 것. 절벽 위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비극은 버팀목이 자신을 옭아맨다는 데 있다. 그건 사랑과 증오가 한 몸일 수밖에 없는 것과 유사하다. 불안과 공포로부터 피신하기 위해 찾은 곳이 감옥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꿔 묻는다면 간절함 없이 삶을 영위할 수 있겠는가.    


"청소를 하면서 그녀는 집 안 구석구석에 쌀알보다 더 작은 검은 색 벌레들을 발견했다. 죽은 벌레들이 한 장소에서 수십마리씩 나와 그녀를 놀라게 했다. 집에 이사온 지 칠년이 넘었지만 그런 벌레는 처음 보았다. 새우를 닮은 그 벌레는 통통하게 살이 찐 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_<틀니>, 92쪽


 

"누군가는 내가 너무 쉽게 과거의 불행을 잊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인생에서 더 낫거나 덜한 것이 있을까. 그때 원했던 것과 지금 원하는 것, 그때 충족되지 못했던 것과 지금 충족되지 못한 것이 있을 뿐이다."

_<대머리>, 205쪽